2027년 유럽에서 시행되는 DPP(Digital Product Passport, 디지털 제품여권)는 지속가능성을 '선언'이 아니라 '데이터'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기업이 ESG 경영을 선언하고 환경보호 정책을 추진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제품 단위에서 환경과 인간에게 안전한지를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젊은 소비자들 중심으로 폐기물 제로, 환경보호, 노동윤리 등 ESG 가치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아디다스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Futurecraft.Loop' 러닝화이다. 이 제품은 100% 재활용 가능한 열가소성 폴리우레탄(TPU) 단일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 운동화는 다양한 소재가 사용돼 분리재활용이 어렵지만, 이 신발은 분쇄와 용융 과정을 거쳐 다시 새로운 신발로 재탄생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폐기물 제로'를 목표로 한 설계이다. 또한, 해안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활용한 '울트라 부스트 팔리'는 한 켤레당 평균 11개의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하고 있다.
아디다스의 전략은 제품 개발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IT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2021년 발표한 'Own the Game' 전략에 의하면 2025년까지 10억 유로 이상을 시스템에 투자하고 1,000명 이상의 IT 인력을 채용한다. 이는 단순히 온라인 판매 확대가 아니라 디지털 리테일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이 전략에서 핵심 기술은 스웨덴의 공급망 추적솔루션 'Trustrace'이다.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인증서를 추적하는 이 시스템은 원자재, 원사, 원단, 염색, 봉제까지 공급망 정보를 통합 관리하며 OEKO-Tex, GRS(재활용표준) 등 다양한 친환경 인증서를 구매주문서(PO)와 연결해 저장한다. 대부분 PDF와 엑셀 형태인 문서는 OCR과 AI를 통해 자동으로 분류되고 핵심 정보가 추출된다. AI는 문서 유형 분류, 핵심 정보 추출, 유효성 검사, 기존 시스템의 데이터 연결까지 수행하며 인증서 진위를 실시간으로 검증한다.
특히 인증서 진위 검증과 물량 대조 기능이 핵심이다. AI는 친환경 인증을 받아 입고된 원단양과 출고된 제품양이 일치하는지 실시간 감사한다. CMC(Certified material compliance) 모듈은 특정 원단과 소재가 정말 '친환경'인지, '인증받은' 것인지를 AI가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증명하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옷의 성분과 출처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시스템이다.
아디다스는 이 시스템 도입 4개월 만에 8,000개 시설에서 1만여종 소재와 스타일에 걸쳐 100만건 이상의 거래를 추적했으며, 현재 매달 수백만건의 데이터 거래를 기록하고 있다. 수작업으로 500만 건의 인증서를 한 사람이 처리하려면 약 19년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AI 자동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아디다스의 순환경제 전략도 명확하다. 재활용 루프(Reuse, 폐기물 재사용), 순환 루프(Circular Design, 재탄생을 고려한 설계), 재생 루프(Regenerative Materials, 생분해 소재 및 친환경 농법 활용)를 중심으로 제품을 설계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100% 재활용 폴리에스터 사용, 2025년에는 90%의 제품이 지속가능성 기준을 충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7년 DPP 시대가 본격화되면 기업은 제품의 생산정보와 환경 영향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앞으로 패션 산업의 경쟁력은 디자인만이 아니라 공급망의 데이터의 품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디다스의 사례는 DPP시대를 준비하는 기업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참고 모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27년 디지털 제품 여권이 의무화되면, 기업은 생산 정보와 환경 영향 데이터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앞으로 패션 산업의 경쟁력은 디자인의 우수성뿐 아니라 공급망 데이터의 품질에도 달려 있을 것이다. 아디다스의 접근 방식은 DPP 시대를 준비하는 기업들에게 가장 실용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큰 모델 중 하나를 제시한다.